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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한은, 13년 만에 금 매입 재개: 외환보유액 전략의 조용한 전환

한국은행이 2013년 이후 13년 만에 금 투자를 재개했다. 2026년 8월 3일 발표에 따르면, 2분기부터 해외 상장 금 현물 ETF를 소규모로 매입하기 시작했고, 국내 생산 금을 사들이는 제도적 기반까지 마련했다. 보유량 104.4톤에 13년간 묶여 있던 한은이 움직인 것이다.

이 결정은 단순한 자산 매입이 아니다. 외환보유액 구성 전략의 방향 전환이다.

과거 트라우마와 현재의 판단

한은은 2011~2013년 사이 총 90톤의 금을 사들였다. 평균 매입 단가는 온스당 약 1,629달러 수준이었다. 직후 금값이 급락하면서 “고점에 샀다”는 비판을 받았고, 그 이후로는 추가 매입을 완전히 중단했다. 보유량은 104.4톤으로 고정됐고, 세계 중앙은행 중 39~40위권에 머물렀다. 외환보유액 대비 비중은 1.1% 안팎으로, 주요국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이 1.1%라는 숫자는 단순한 비율이 아니다. 외환보유액의 절대 규모가 4,200억 달러를 넘는 상황에서 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이 정도라는 것은, 한은의 자산 포트폴리오가 사실상 달러와 주요국 국채 중심으로 극단적으로 편중돼 있다는 뜻이다. 위기 시 유동성 확보에는 유리할 수 있지만, 지정학적 충격이나 달러 체제 자체의 불확실성이 커질 때 완충 능력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구조적 취약점을 드러낸다. 일본이 800톤대, 중국이 2,300톤 이상을 보유하고, 여러 신흥국 중앙은행이 수년째 금을 꾸준히 늘리는 흐름과 비교하면, 한국의 낮은 비중은 ‘안전 자산 다변화’에서 뒤처져 있다는 평가로 이어진다.

 

이번 재개는 그 트라우마를 넘어서는 결정이다. 한은 외자운용원장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상시화되면서 각국 중앙은행이 안전자산으로서 금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폴란드가 올해만 수십 톤을 추가 매입하고, 중국도 지속 매수하는 흐름 속에서 한국만 멈춰 있을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금값이 올해 초 온스당 5,300달러를 넘었다가 4,000달러대로 조정을 받은 점도 매입 부담을 줄이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과거처럼 단기 가격 전망에 베팅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외환보유액의 구성 자체를 바꾸겠다는 전략적 선택이다.

매입 방식의 신중함과 그 의미

한은은 대규모 일회성 실물 금 매입 대신,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장기적으로 금 비중을 확대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이는 단순히 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외환보유액 운용 방식을 구조적으로 바꾸겠다는 신호에 가깝다.

 

첫째, 해외 상장 금 현물 ETF를 활용했다. 2분기부터 소규모 편입을 시작했으며, 실물 금을 직접 보유하지 않더라도 금 가격 상승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필요 시 매매가 쉽고 유동성이 높아, 향후 보유 규모를 점진적으로 조절하기에도 적합한 수단이다.

 

둘째, 국내 생산 금을 활용한다. LS MnM과 고려아연 등 제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 금 가운데 국내 수요를 제외한 수출 예정 물량(연간 약 4~5톤)을 대상으로, 한국거래소와 예탁결제원의 협조 아래 장외 대량거래 방식으로 매입한다. 국제 금 시세를 기준으로 원화로 결제하기 때문에 해외에서 달러를 사용해 금을 매입하는 방식보다 환율 변동 위험을 줄일 수 있으며, 국내 금 시장의 가격 왜곡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시장에 "가격을 끌어올리면서 공격적으로 금을 매입하겠다"는 신호가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안정적으로 금 보유 비중을 확대하겠다는 신호를 보낸다. 중앙은행이 단기간에 대량 매입에 나설 경우 금 가격 상승과 시장 투기 심리를 자극할 수 있지만, 이번 방식은 이러한 부작용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다.

 

또한 국내 생산 금을 우선 활용함으로써 해외에서 달러를 유출하지 않고도 금 보유량을 늘릴 수 있으며, 이는 외환보유액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국내 비철금속 산업에도 안정적인 수요처를 제공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금 보유 비중이 점진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특정 시점의 금 가격 상승에 베팅하는 전략이 아니라, 달러 중심의 외환보유 구조를 다변화하고 지정학적 위험과 글로벌 금융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방향으로 외환보유 정책의 성격이 변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향후 이러한 기조가 유지된다면 금은 외환보유액에서 단순한 안전자산을 넘어, 달러 자산과 함께 핵심 준비자산으로서의 비중을 점차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

경제적 함의

한은의 금 매입 재개는 단순히 금 보유량을 늘리는 조치가 아니라, 외환보유액 운용 철학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지금까지는 미국 국채와 달러 자산을 중심으로 안정성과 유동성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앞으로는 지정학적 리스크와 국제 금융 질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자산 다변화의 비중이 점차 커질 가능성을 시사한다.

 

첫째, 외환보유액의 달러 의존도를 점진적으로 완화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최근 국제 금융시장은 미·중 전략 경쟁, 경제 제재 확대, 지역 분쟁 장기화 등으로 과거보다 정치적 변수가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다. 달러는 여전히 세계 기축통화이지만, 특정 국가의 정책 변화나 제재 리스크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자산이기도 하다. 반면 금은 국가의 신용이나 통화정책과 무관하게 가치를 인정받는 대표적인 실물 안전자산이다. 따라서 금 비중 확대는 달러를 대체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극단적인 위기 상황에서도 외환보유액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위험 분산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둘째, 국내 금 생산·유통 인프라를 활용한 새로운 공급 체계를 구축했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기존에는 해외 시장에서 달러를 사용해 금을 매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국내 제련업체가 생산하는 금을 국제 시세 기준으로 원화 결제해 매입하면 달러 유출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환율 변동에 따른 비용도 줄일 수 있다. 또한 한국거래소와 예탁결제원이 참여하는 장외 거래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중앙은행이 시장 가격을 왜곡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금을 확보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했다. 이는 향후 금 보유량 확대를 위한 제도적 인프라를 미리 갖추는 의미도 가진다.

 

셋째, 정책의 상징성과 방향성은 크지만 단기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다. 국내에서 확보 가능한 금이 연간 약 4~5톤 수준인 만큼, 현재 104.4톤의 금 보유량을 단기간에 크게 늘리기는 어렵다. 외환보유액 전체에서 금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단기간에 의미 있는 수준으로 상승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이번 조치만으로 외환보유 구조가 크게 달라졌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2013년 이후 사실상 중단됐던 금 매입을 다시 시작했다는 점 자체가 정책 기조의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넷째, 국제적인 중앙은행들의 흐름과 보조를 맞추기 시작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은 금을 단순한 투자 자산이 아니라 국가 신뢰와 금융안정의 핵심 준비자산으로 인식하며 꾸준히 보유량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신흥국 중앙은행들은 달러 편중 위험을 줄이기 위해 금 매입을 지속하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는 단기간에 끝날 가능성이 낮다. 한국은행 역시 그동안의 신중한 입장에서 벗어나 이러한 국제적 흐름에 점진적으로 합류하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한계도 존재한다. 금은 장기적으로 안전자산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자산이며, 가격 변동성도 존재한다. 따라서 금 비중을 지나치게 빠르게 확대할 경우 외환보유액의 유동성과 운용 효율성이 저하될 가능성도 있다. 결국 한은은 안정성, 유동성, 수익성이라는 세 가지 목표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하며, 이러한 이유로 대규모 일회성 매입보다는 장기간에 걸친 점진적 확대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향후 한은의 다음 행보는?

현재까지의 정책 방향을 고려하면, 한국은행이 단기간에 수십 톤 규모의 금을 추가 매입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오히려 국내 생산 금을 중심으로 매년 일정 물량을 꾸준히 확보하고, 필요에 따라 해외 금 현물 ETF나 국제 시장에서의 실물 금 매입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보유 비중을 서서히 높여갈 가능성이 크다.

 

또한 향후 글로벌 지정학적 긴장이 심화되거나 주요 중앙은행들의 금 매입이 지속될 경우, 현재의 연간 매입 규모를 점진적으로 확대하거나 국내 보관 체계와 거래 인프라를 더욱 강화하는 정책이 뒤따를 가능성도 있다. 반대로 국제 금융시장이 안정되고 달러 자산의 매력이 다시 높아진다면 매입 속도를 조절하면서 현재의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이번 금 매입 재개는 '금값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에 따른 투자 결정이라기보다, 불확실성이 커지는 국제 금융 환경 속에서 외환보유액의 회복력과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장기 전략의 출발점으로 해석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 향후 한은의 정책 역시 급격한 방향 전환보다는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금 비중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신중한 접근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한은 금 매입 재개 공식 발표·보도

보유량·비중·과거 매입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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